요즘 20~30대에 인기 끄는 한 증류소만의 술

와인 열풍이 지나가니 막걸리 열풍이다. 위스키 시장이 ‘울상’일 법한데 웃고 있단다. 그 이유는 2008년부터 매년 25% 이상 성장하고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 때문이다. 싱글몰트 위스키란 한 증류소에서만 나온 몰트(싹을 틔운 보리) 위스키로만 만든 술을 뜻한다. 한국에서 유명한 임페리얼·발렌타인 등은 여러 증류소의 술을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블렌디드보다 맛과 향이 복잡하고 고급스러우며 가격도 비싸다. 생산되는 증류소와 지역, 사용되는 물과 오크통 등에 따라 맛과 향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위스키가 주로 ‘폭탄주’용으로 활용되는 한국에서 이런 고급 술이 잘 팔리지 않을 거란 예상을 깨고 선전하고 있는 이유는, 위스키 소비자층의 변화 때문이라고 업계에선 분석하고 있다. 과거엔 룸살롱을 다니는 30~50대 남성들이 주 소비자층이었는데, 최근 들어 20~30대 남녀들이 바에서 ‘잔술’로 많이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의 고급 바에서는 젊은이들이 ‘매캘란’이나 ‘글렌피딕’을 마시는 게 요즘 유행이자 트렌드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책 <위스키 성지여행>에서 싱글몰트 위스키는 저마다 ‘퍼스낼리티’가 존재하고 있다며 이 술을 극찬한 바 있다. 이 저마다의 ‘퍼스낼리티’ 때문에 싱글몰트 위스키를 가짜로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짜 양주를 피하려면 ‘싱글몰트 위스키’를 시키면 된다.

세계 싱글몰트 시장 점유율 1위인 글렌피딕을 비롯해 매캘란, 글렌리벳, 발베니, 라프로익 등 유명 싱글몰트 위스키를 ‘대중문화평론가’ ‘애주가’ 등의 직함으로 일하고 있는 임범(48)씨와 함께 시음했다. 임씨는 최근 술과 영화 이야기를 묶는 <술꾼의 품격>(씨네21북스)을 펴냈으며 현재 <한겨레21>에서 ‘임범의 내가 만난 술꾼’을 연재하고 있다. 기사는 임씨와 함께 시음한 평가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싱글몰트 시장의 선두주자 글렌피딕 균형감 뛰어나

◎ 글렌피딕 15년산 | 글렌피딕은 전세계 싱글몰트 위스키 시장의 35%를 차지하고 있는 압도적인 ‘리더’이며 ‘싱글몰트’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 ‘싱글몰트의 역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몰트 위스키 증류소에선 생산량의 90%를 블렌디드 위스키용으로 내보내고, 나머지 10%를 싱글몰트 위스키로 쓰는 것과 달리 이 술을 만들고 있는 ‘윌리엄 그랜트 앤 선스’의 증류소들은 90%를 싱글몰트 위스키로 쓰고 나머지 10%를 블렌디드 위스키용으로 쓴다. 그만큼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이 회사는 1887년 글렌피딕을 처음 증류한 이래 지금까지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15년산은 스페인 셰리(포도주에 브랜디를 섞은 술)통, 아메리카 버번통, 새 오크통 등 세 종류의 통에서 숙성시킨 술로, 꿀·바닐라·시나몬·생강 등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시음 평가는 단맛과 드라이한(달지 않은) 맛, 과일맛과 오일리한(느끼한) 맛 등이 치우침이 없으며 균형감이 뛰어나다. 날씨나 기분에 상관없이 언제든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다. 가격 700㎖ 9만6000원.

묵직한 향과 강한 단맛 매캘란 여성에게 강추

◎ 매캘란 15년산 | 글렌피딕, 글렌리벳과 함께 스카치위스키 5대 생산지 중 하나인 스코틀랜드 스페이강 유역에서 만들어진 술이다. 세계 시장에선 점유율 3위지만 국내에선 글렌피딕 다음으로 인기가 많다. 매캘란은 술을 만드는 여러 요소 중 최상의 오크통을 확보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위스키를 숙성하는 데 가장 적합하지만 생산량이 적어 가격이 비싼 셰리오크통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매캘란 18년산은 영국의 위스키 잡지 <위스키 매거진>에서 90여종의 싱글몰트 위스키 중 최고의 위스키로 선정된 바 있다. 또 1926년산 빈티지 매캘란은 200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5만4000달러(약 4964만원)란 사상 최고가에 낙찰된 바 있다. 시음한 12년산은 은은한 황금색을 띠고 있으며 섬세한 미각이라면 장미·시나몬·초콜릿·오렌지·건포도 등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글렌피딕과 마찬가지로 맛이 꽉 차 있고 균형감이 느껴진다. 향 또한 묵직하고 안정돼 있다. 또 단맛이 강해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다. 가격 700㎖ 13만9000원.

부드럽고 달콤한 맛 발베니 여성에게 적합

◎ 발베니 12년산 |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리 재배부터 병입까지 전 제작 과정이 100여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수작업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다. 100% 수제 생산되는 탓에 생산 물량이 한정돼 있다. 12년산은 전세계 출시된 12년산 위스키 중 가장 고가를 자랑하는 싱글몰트 위스키로, 버번을 담았던 전통적인 오크통과 셰리오크통에서 2번 숙성시킨 탓에 원액 각각의 독특한 특징이 잘 조화돼 있다. 부드러운 꿀맛과 은은한 바닐라향이 특징이다. 맛은 아주 부드럽고 가벼우며 달콤하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을 맛이다. 가격 700㎖ 9만5000원.

점유율 2위 글렌리벳 오크통 나무향맛 일품

◎ 글렌리벳 15년산 | 영국에서 증류 합법화 이후 최초로 합법적인 증류 먼허를 획득한 싱글몰트 위스키다. 세계 싱글몰트 위스키 시장에서 2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선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타임>지는 “영국 수출의 심장은 스카치위스키이며 스카치 산업의 중심에 글렌리벳이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15년산은 감귤·망고 등의 톡 쏘는 듯한 과일 맛과 향이 풍부하다. 이 맛들이 계피, 흰 후추 등과 조화로운 맛을 이루고 있다. 숙성 과정 중 마지막 3년을 뉴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하기 때문에 특유의 오크통 나무향으로 맛이 마무리되는 것도 특징이다. 가격 700㎖ 13만원.

맛과 향이 독특한 라프로익 가장 강한 위스키

◎ 라프로익 10년산 | 맛과 향이 너무나 독특해 시음한 싱글몰트 위스키 중 가장 개성이 강한 술이었다. 향은 ‘소독약 냄새’가 톡 쏘아 사람에 따라선 놀랄 수도 있다. 하지만 훈제향도 부드럽게 배어 있다. 맛은 단맛이 덜하고 짠맛이 강하게 난다. 이유는 스코틀랜드 남서쪽의 ‘아일레이’라는 작은 섬의 바닷가에서 제조해 해수와 해풍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애주가들 사이에서는 ‘스코틀랜드 바닷가의 향과 맛을 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루키는 싱글몰트 위스키 중 특히 아일레이산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찬하기도 했다. “맛 좋은 아일레이 싱글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단 말이오? 그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하지만 라프로익은 독특한 맛과 향 때문에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리는 술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싫어하는 술이다. 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워낙 맛이 강하다 보니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가격 700㎖ 9만5000원.